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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사도행전] 16장 제 2차 전도 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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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026-05-14 06: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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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supax/220133302943>

 

  • 분열된 전도팀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15:36-39)

 

 바울 사도는 1차 전도 여행 중에 세웠던 교회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돌아볼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이지요. 종종 선교사님들이 세운 교회가 그 선교사님이 지역을 떠나거나 은퇴를 하여서 더 이상 후원하지 않거나 돌아보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래서 선교도 중요하지만,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고,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울이 바나바에게 각 성에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오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1차에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갔었는데, 중간에 돌아왔지만 이번에도 함께 가서 사역을 하자고 합니다. 우리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바울이 반대를 합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니까 바나바는 마가의 편을 들어 두둔하다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선교팀이 분열됩니다. 

 

 그런데, 선교팀이 2개가 됩니다. 이런 부분도 참 놀라운 일인데, 세상은 이렇게 분열되어서 싸우고 다투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되는데, 하나님의 일은 놀랍게도 더 부흥하게 됩니다. 종종 지역교회가 어떤 문제로 분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서로 상처가 되고, 교인들의 마음에 큰 아픔이 되기도 하는데, 지나고 보면, 교회가 2개 이상이 되어서, 여러 지역으로 퍼져서 열심히 전도하여 각 교회가 부흥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싸우는 것이 모양세가 좋지 않지만, 어째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지도 않고, 속으로 썩어 병들어 가는 것보다, 갈라져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도 좋은 것입니다. 이왕에 갈라질 거, 싸우기 전에 미리미리 선교하고 전도하여서 분리개척을 시키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인 것 같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39)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1차 선교를 했던 자기 고향부터 챙깁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40-41)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왔던 실라와 함께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수리아는 안디옥 도시가 있는 로마의 행정지역이지요. 길리기아는 수리아 북쪽과 서쪽에 접한 지역입니다. 아마도 바울이 육로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16:1-3)

 

 길리기아를 지나 1차 전도 여행에서 선교했던 더베와 루스드라를 지나는데, ‘디모데’를 2차 전도 여행에 합류를 시킵니다. 수행원이 부족했던 모양인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일군을 예비하셔서, 바울 전도팀에 합류시킵니다. 디모데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할례를 행하는데, 이는 디모데를 유대 사회의 일원으로 확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유대교에서 아직 돌이키지 않은 형제들을 전도할 때에 걸림이 없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이방인들은 굳이 할례를 받도록 하지 않았지만, 유대인의 피가 섞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관습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답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지만, 우리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우리 문화와 관습을 지켜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상숭배나 조상 제사같은 것은 배척한다고 할지라도, 웃어른에게 절을 한다든지, 예를 갖추어서 행동하는 것들은 한국 사람으로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4-5)

 

  • 소아시아 선교 대신 유럽으로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6-7)

 

 바울 사도는 루스드라와 더베에서 멀지 않은 서쪽의 (소)아시아 지역으로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북쪽 지역의 비두니아 땅으로 가려고 해도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참 고민이 되겠지요?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왜 계속 막으실까요? 하나님께서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한 두번 실패를 맛보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주저합니다. 어쩌면, 다시 바나바 선교팀과 화해를 하여 1차 전도 여행지로 다시 가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것 같은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8-9)

 

 바울팀이 ‘드로아’에서 기도합니다. 환상 중에 한 마케도니아 사람이 자기들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손짓합니다. 이 한 사람이 누굴까요? 신학자들은 아마도 가장 마케도냐에서 유명한 사람,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 제국을 세웠던 가장 유명한 황제였던 사람이 바울에게 마케도니아(마게도냐)로 배를 타고 건너오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 환상을 보고 주님의 뜻이 그곳에 있다고 확신하며 그곳으로 가지요.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0)

 

 우리도 어떤 꿈이나 사건이나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접적으로 천사가 나타나 음성을 들려 주지 않았지만, 한 사람의 손짓과 부르짖음이 주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것이 얼마나 섬세하고 감정적으로 성령과 교감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1-14)

 

 바울 일행이 드디어 빌립보 성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무작정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회당부터 찾는데, 디아스포라 유대인 루디아를 만납니다. 굉장히 고급 옷감을 취급하는 여성인데, 자색 옷감은 그 염료가 희귀하여 왕족들이나 입을 수 있었습니다. 뿔소라, 뿔고동 1만 마리를 잡아야 겨우 옷 한 벌 염색할 정도의 염료가 추출되니까 굉장히 귀한 것입니다. 이런 고급 옷감을 취급하는 여성을 만나 복음을 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어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5)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들이고, 그곳에서 루디아와 가족들이 세례를 받았으며, 바울 사도가 거기서 말씀을 전하게 하였기에 그 가정이 교회가 됩니다. 빌립보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6-18)

 

 바울이 루디아의 집에 가만히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니라 빌립보 도시에 여러 회당들을 찾아 다닙니다. 그러다가 한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는데, 이 여종이 따라 다니면서 바울 일행의 전도를 방해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종에게 들어갔던 귀신을 쫓아냅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한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데, 그 여종의 주인은 그 여종을 이용해서 돈벌이(점치는 일)를 했던 일이 끊기자, 바울 일행을 법정에 고소합니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19-21)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니까, 상당히 그 빌립보 성 안에 믿는 자들이 많이 따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관리들이 고소하는 사람 말만 듣고, 바울 일행을 잡아서 매질을 하고 감옥에 넣게 됩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2-25)

 

 사도 바울이 변명할 틈도 얻지 못하고 많이 두들겨 맞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로마  사람들은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어가는 유대인들을 혐오했습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의 장사 수완이 좋았기 때문에 유대인 상인들이 진출한 곳은 상당히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군중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여종의 주인은 바울 일행을 잡아다가 매질을 하고 감옥에 가두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런 고통스럽고 억울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박해를 받았지만,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26-32)

 

 찬송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밤에 모든 감옥의 차꼬가 풀어지게 땅을 진동시켰습니다. 사실 지진이 일어난다고 해서 수갑이 저절로 풀어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지요. 바울, 실라 그리고 수많은 죄수들이 그 밤에 탈주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도 나가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죄가 있어서 들어온 것이 아니니까 나가지 않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놀라서, ‘이제는 죽었구나!’ 하면서, 불명예스럽게 군인들에게 죽느니, 차라리 죄수들의 손에 죽임 당한 것처럼 자결하려고 칼을 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만류하여 간수의 목숨을 살리지요. 

 

 바울과 실라가 죄없이 이렇게 빌립보 감옥에 갇힌 것은 그 간수와 그의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그렇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만날 길이 없는 간수조차 복음의 일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함을 통해서 감옥에 집어 넣고, 그곳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케 하십니다. 우리 성도들도 깊이 이런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죄를 짓지도 않고,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사고를 만나면, 혹시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지는 않은 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도저히 알 길이 없으면, 바울과 실라처럼, 주님을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될 때가 있습니다. 어째든, 바울을 통해서 간수의 가정이 주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옥에 있었던 수많은 죄수들도 하나님을 체험하고, 복음을 듣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3-34)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툼과 분열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편협하고 옹졸한 우리들이지만, 형제 자매를 미워하지 않게 하시고, 의견이 나뉘고 함께 일하지 못하여도 주님의 뜻을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복음은 때로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 역사합니다. 주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을 알아, 항상 화평한 가운데, 용서하며, 복음의 진리를 전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기적을 보게 하시고, 예배하는 가운데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수고와 땀과 고통이 새생명을 얻는데 쓰이게 하시고, 복음의 진보가 되게 하옵소서! 때로는 박해를 받고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고난을 당해도, 주님의 뜻을 구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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