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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사도행전] 9장 (2) 애니아와 다비다에게 나타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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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026-03-25 12: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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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31)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 유대교에 의한 박해와 핍박은 심해졌지만, 빌립과 같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흩어진 성도들이 곳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주님께서 귀하게 쓰실 사울까지도 회심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몇몇 수집된 내용을 누가가 사도행전에 기록하고 있지만, 성경에 소개되지 않은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그런 일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졌으며,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넘어서서 갈릴리까지 복음이 전해집니다. 

 

 한편, 처음부터 가장 담대하게 교회를 이끌었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까요? 다시 관심은 베드로 사도의 사역에 초점을 맞춥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에 가만히 앉아서 남아 있는 성도들만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이 전해진 곳에 세례를 베풀며, 각 지역에 지도자들을 세우고, 교회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2)

 

 

 

  룻다는 지리적으로 팔레스타인 해안 평야 지대인 사론(Sharon) 평야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욥바(Joppa, 현대의 텔아비브/야파)에서 동남쪽으로 약 18km(약 9~11마일) 떨어져 있으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요충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롯(Lod)'으로 불렸으며(역대상 8:12),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 속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의 로드(Lod, לוד)라는 도시입니다. 텔아비브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현대의 벤구리온 국제공항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로 유대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했던 것 같습니다. 성도들을 살피는 중에 중풍에 걸린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아마 믿음이 있던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성도들 가운데 이 사람을 고쳐달라는 요청을 받았는지, 아니면 룻다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애니아란 사람은 참 복받은 사람입니다.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3)

 

 8년 동안도 병들어 있었는데,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못 들었다면, 이렇게 질병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되었을 것 아닙니까? 세상에는 버젓이 죄를 짓고도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람도 많은데, 이 질병 가운데 복음을 듣고 기적을 체험하니 말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칭찬받는 자’란 의미가 있는데, ‘찬양하다’라는 어원에서 왔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서 오랜 동안 고난과 고통 속에서 혹은 질병 속에서 아픔을 견디고 있다가 ‘주’를 만나 기적을 체험하고 회복하고, 자유를 얻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과거의 기나긴 시간이 허무한 시간일까요? 오히려 그 시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놀라운 찬양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4-35)

 

 베드로가 말을 하지만, 치료하시고 고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능력을 베푸신 것입니다. 마비증세로 인해서 자기 몸조차 거동할 수 없던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곧 일어납니다. 그리고 움직여서 자기의 자리를 들고 건강한 몸으로 나가지요. 얼마나 감격의 기쁨을 누리겠습니까? 그 동안 오랜 고통 속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질병으로부터 해방입니다. 할렐루야! 

 

 이 애니야를 통해서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시는 주님의 본 수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함께 찬양을 부르며,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기뻐하며 교제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박해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제 2의 사울과 같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박해할 때인데, 그럴 때일수록 복음은 점점 퍼지고, 기쁨과 성도의 교제는 넘칩니다. 참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이 복음은 기존의 무미건조한 질서를 흔들어서 파괴하고 영혼에게 참 자유를 줍니다. 온갖 시기와 질투와 반발을 일으키겠지만, 동시에 새로운 변화와 개혁과 기쁨과 해방은 넘칩니다. 복음의 특성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렸지만, 성도들을 주님의 부활로 인해 더욱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했고, 이제까지 두려움과 불안에 떨던 성도들은 자신감과 확신에 차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6-37)

 

 고대 중근동 지방에는 아름다운 여인을 ‘사슴’에 빗대어 이름을 짓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비다는 아람어인데, ‘영양’, ‘가젤’ 이라는 의미입니다. 도르가는 그리스식(헬라) 이름입니다. 뜻은 동일합니다. 이 여인은 ‘여제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여성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아주 잘 따르고 실천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잘 믿고, 교회봉사도 열심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인데,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을 두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에게 질병을 주고, 일찍 데려가느냐?’ 하면서, 그 죽음을 핑계로 하나님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에 너무 휘둘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한치 앞을 못 보기 때문에 일면 타당해 보이는 주장이나 말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인 사람을 고치실 때, 제자들은 그나 그의 부모의 죄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인지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런 일이 있다 하시며, 예수님께서 그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비슷하게 이 ‘다비다’도 그렇습니다. 

 

 우리 같으면, 사람이 죽으면, 관에 넣어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火葬)을 시키든지 땅에 묻든지 했을텐데,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여 놓았습니다. 차마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여인들, 특히 다비다를 통해서 복음을 들은 여성들이 많았기에 좀더 슬퍼하고 아픔을 나눌 수 있게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죽음과 다시 살게 된 것을 보임으로 앞으로 부활에 대한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큰 그림인지 모릅니다. 

 

 욥바에서 베드로가 다비다에게 온 것은 그녀가 아직 천국에 갈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모르지만, 베드로는 우는 주변의 사람들을 물러가게 한 후에 주님께 기도하여 놀라운 이적을 행하도록 합니다.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38-40)

 

 성령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죽었던 다비다가 산 것입니다. 분명, 사늘한 주검이었던 그녀였는데,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마치 자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일어나 베드로 앞에 앉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훗날 우리가 죽음 후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예표합니다. 다비다가 이때 살아나서 영원히 죽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처럼 ‘부활’한 것은 아닙니다. 다비다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중년 이상의 연배였을 것입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노환으로 인해서 아마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진짜 부활은 이 우리 육신이 모두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새로운 육신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변형되신 예수님의 몸처럼. 그 부활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41-43)

 

 베드로를 초청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뻐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간증이 이어져, 욥바는 물론 룻다와 그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적의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베드로가 전한 예수님의 복음은 더 많은 사람들을 얻게 되었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냥 놀라운 일이라고 하면서, 즐겁게 그 이야기를 듣기는 하겠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러한 기적을 본 구경꾼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듯이 말씀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기적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기적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데, 생명의 부활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주님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애니아처럼 주님을 만나겠지만, 다비다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김을 받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찾고 부르는 자에게 영원한 산 소망이신 주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도 베드로는 유다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는 점점 심해지고 교우들은 흩어졌지만, 그곳에 안주하여 낙심하지 않고, 복음을 들고 곳곳을 다니며 주님의 복음을 전했던 그 믿음과 용기와 결단을 배우게 하시고,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주님의 복음일 전해지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참 위로와 능력이 있습니다. 중풍병자 애니아 같이 마비된 우리의 답답한 심령이 주의 복음으로 뚤리게 하시고, 능력있게 주의 복음을 전하며,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일어서서,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이해할 수 없는 질병과 고통과 죽음이 닥쳐도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을 찾고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기적을 체험하고, 다른 이들을 섬길 때에 복음의 능력을 경험케 하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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