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렘브란트, 유대인들로부터 돌을 맞는 스데반 집사, 1625년. 리용미술관, 프랑스>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1-4)
예루살렘 공회에서 종교 재판을 받는 스데반입니다. 그는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모든 고위층들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재판까지 하면 최소한 예루살렘 공회 의원들이 3번 정도는 예수님에 대해 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설교와 앞의 사도들의 설교도 완악한 저들의 마음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이 설교를 단 한 번 듣고 예수님에 대해서 지식이 쌓인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훗날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울입니다.
아무튼, 스데반이 하는 이 설교는 성경에 기록이 되었을 만큼 정확하고 핵심적인 요점을 전달합니다. 구약의 39권의 성경이 요약하려면 굉장히 방대하고 내용이 많은데, 그것을 이 한 장에 담아 내었다는 것은 스데반이 얼마나 지혜와 지식이 충만했는지 보여 줍니다. 이 지혜가 사람에게서 온 것일까요? 성령으로부터 난 지혜인 줄 믿습니다.
스데반은 선조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같은 이방인은 아담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아담부터의 이야기는 과감하게 생략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말인 즉슨, 지금 스데반의 설교와 핵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역시 모든 계획은 영광의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5-8)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그 땅을 당장에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만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 땅을 차지할 것이란 내용이지요. 430년 간 이집트의 종살이 후에 하나님께서 그 이집트를 심판하시고 그 자손들을 이끄셔서 가나안 땅에 들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가 할례였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9-13)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을 통해 12지파의 조상들이 생겼고, 요셉을 통해 이집트로 온 이스라엘 조상과 가족들이 이집트에 정착하게 됩니다. 물론,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합력하여 선이 된 것입니다.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4-17)
정말 수백 년이 지나 하나님의 약속하신 때가 되니까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하나님의 종 모세를 택하셔서 보내게 되지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18-34)
스데반이 상당히 내용을 요약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모세의 이야기는 좀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서 설교합니다. 이것은 스데반이 모세를 모독하지 않았다는 간접적인 자기 방어가 있습니다. 또한 스데반이 어떻게 모세를 평가하는지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민족의 지도자입니다. 모세가 사역한 것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입니다.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5-38)
스데반은 모세를 하나님의 종이자, 선지자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지도자로서 굉장히 위대하게 평가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마지막에 자신의 뒤를 이을 선지자를 예언했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점을 만들어 둡니다. 또 한 가지, 살아 있는 말씀이란 용어를 선택합니다. ‘살아 있는 말씀’이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와 대조되는 연약한 제사장 아론을 언급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39-41)
물론,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집트에서 우상 숭배를 보고 살았던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스스로 만들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없던 일이 아니라, 그 이집트에서 섬기던 여러 신들을 가져다가 그것들을 섬기는 죄를 짓고 맙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42-43)
아론의 때부터 하나님과 모세를 거역한 이스라엘이 그 조상의 행위대로 지금도 행하였음을 스데반이 지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몰록이라든지 레판을 섬기는 큰 죄를 짓게 되어, 결국에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고초를 겪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를 잘 따르면서 그의 제자라고 우기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오히려 모세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누가 더 신성모독입니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성전에서 버젓이 다른 신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를 박해하고 죽이지 않습니까?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4-47)
광야 교회부터 성막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세우게 하셨고, 또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이나 조그만 건물 같은데 가둘 수 있는 분이 아니지요.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께서 어찌 인간이 만든 조그만 천막이나 건물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역시 솔로몬의 기도 가운데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스데반이 이런 모든 것을 언급하면서, ‘살아 있는 말씀’ 이자 모세가 약속한 선지자, 그리고 참 성전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부하고 죽였다고 증거합니다. 스데반도 설교를 하면서 점차 감정이 겪해져서, 이스라엘 장로들이나 공회 의원들을 책망하지요.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48-53)
지금 누가 누구를 재판하고 심판하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살인한 자들은 유대의 공회원들인데, 스데반이 예수님을 전한다고 잡아 죽이려 합니다. 살인자가 의인을 재판하는 꼴입니다. 이 세상도 역시 그렇게 불의합니다.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도 거짓과 날조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모든 죄악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이고, 악인들은 영벌에 처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4-58)
공회원들이 더 이상 스데반의 말은 듣지 않고 스데반의 옷을 벗겨서 사울(훗날 바울) 앞에 두고, 사형장으로 스데반을 끌고 가지요. 스데반이 자기들의 죄를 지적하는 것을 못 견딘, 공회원들은 사람들을 시켜서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고가서 돌로 쳐서 스데반을 죽입니다. 이 과정을 다 지켜 본 것이 사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적어도 단 한 사람에게는 가슴 속 깊이 새겨져서 남았습니다. 그것이 사울, 즉 바울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스데반의 설교를 잘 들었다가 회심하여서 사울은 사도 바울이 되고, 그의 설교를 누가에게 전해 주어서, 사도행전으로 기록이 되어 오고 오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이 비록 목사나 선교사가 아니라도,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면, 그 말씀이 역사하여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회가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단,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설교가 전 세계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바른 복음은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전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기도) 하나님 아버지!
초대교회의 지도자였던 스데반의 죽음을 봅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해서 목숨을 걸고 진리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구약 성경을 꿰뚫고 알 정도로 실력을 갖춘 스데반처럼, 우리들도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알고 이해하게 하시고,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 세상은 참 악합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저희들이 진리를 수호하게 하시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하게 하옵소서! 혹 복음을 전하다가 어떤 박해를 당할지라도 이기게 하옵소서! 온 세계에 퍼져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과 그 가정을 지켜 주시고, 사역에 큰 열매가 있게 하옵소서!
때론 모두 실패한 듯 보여도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이 사울에게 전해져 그가 훗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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