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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누가복음] 13장 (1) 무화과나무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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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7회 작성일 2025-08-06 10: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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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03 >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1)

 

 누가복음 12장 말미에 예수님께서 소송으로 법정 다툼이 시작되기 전에 화해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예수님의 의견을 묻습니다. ‘누가’나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어서 그 일에 대한 상세한 사건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결과만을 놓고 짧게 결론만 언급합니다. 

 

 그런데, 2천 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들은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요. 학자들에 따르면, 빌라도가 예루살렘을 위한 수로 공사를 제안했습니다. 문제는 그 수로 공사의 비용을 예루살렘 성전에 바치는 성전세나 희생 제물의 일부로 충당하자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많은 물소비가 일어나는 이유가 그 희생 제물을 씻는데 있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렇게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반발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부의 갈릴리 사람들(유대인)이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을 이방 사람이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하여 무장 봉기를 일으킵니다. 유혈 충돌이 발생하지요. 빌라도는 군사들을 통해 이들을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리고 무장 봉기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성전 희생 제물에 이 사람들의 피를 함께 섞여 드리도록 했습니다. 끔찍한 일이지요.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께 바치는 성전세금을 이방 로마 총독에게 빼앗겨도 그대로 당해야 합니까? 하나님과 성전을 모독하는 일이 아닙니까? 봉기를 일으킨 갈릴리 사람들은 어찌보면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그 당시 사람들은 저들이 저렇게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죄’ 때문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나 가만히 지켜만 보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이나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말씀합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2~3)

 

 가장 열성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성전을 위해서 싸웠던 그들이 ‘죄인’이라면, 그 뒤에서 비겁하게 ‘인과응보(因果應報)’란 식으로 정죄하고 뒤에서 험담하는 이들은 더 죄인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의 방점은 ‘회개’입니다. 누구나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이 갈릴리 사람들처럼 무참히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5)

 

 비슷하게 예수님 시대에 망대가 무너져서 그 망대가 무너질 때, 사고를 당해 죽은 사람이 18명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고로 죽은 그 18명도 예수님께서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먼저 죽느냐, 나중에 죽느냐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사고로 죽느냐, 자연사 하느냐 차이만 조금 있을 뿐, 누구나 ‘회개’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비유를 통해 이야기 하십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눅 13:6-9)

 

 무화과나무의 비유인데, 여기서 한 사람은 하나님입니다. 온 세상 가운데 무화과나무 같이 이스라엘을 심으셨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3년 동안이나 특별한 보살핌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맺히지 않으니 찍어 없애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간절히 중보해서 심판이 미뤄집니다. 여기서 이 비유는 끝납니다. 

 

 우리는 그 뒤의 결과를 알고 있지요.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에 달려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내 예수님을 거부하지요.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AD 70년 경에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됩니다.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표적 사건입니다. 포도원 같은 온 세상에 수많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있듯이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존재합니다. 주인의 뜻대로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을 베듯이 그 나무들도, 다시 말하면, 온 나라와 족속과 지역까지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 온 세상에 두루 복음이 전파 되기 시작해서, 거의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돌이키지 않으면, 이 세상은 완전한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섬긴다는 그 갈릴리 사람들이나, 갑자기 사고로 죽은 실로암 망대의 사람들이나 그들은 자기 스스로의 종말적 결론을 바르게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는 사람이나 아무 죄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갑작스런 사고의 죽음이나 종말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판단하는 남은 사람들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나 역시 그들의 끝도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들었을 때, 즉시 반응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단순히 예배당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정치적 구호를 외치거나 그 일을 위해서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일상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란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주인된 권리를 행하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요일 마다 예배당을 가고, 성전에서 봉사하고, 남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다.’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내가, 이 자아가 주인된 자리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이 주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자아가 깨어지고 부서지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을 인정하고 모시어 들이면,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행하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회개’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먼저, 내가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내 뜻과 고집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죄인된 모습을 버리게 하옵소서!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전혀 예수님의 방법대로 행하지 않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속에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고치시며, 주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옵소서!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변화하여 새사람되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주님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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