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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를 대하는 태도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4:1-5)
4개의 그룹으로 고린도교회가 나눠졌는데, 대부분 어떤 목회자에게 양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는가에 따라서 나뉜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신분이 되고 계급이 될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성도가 목회자를 판단하는 것도 그리 옳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각자 맡겨진 일도 다를 뿐더러, 상급이나 칭찬이나 책망이나 심판까지 주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일에 충성하면서, 사랑으로 협력할 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4:6-8)
바울과 아볼로는 겸손하게 자기 맡은 일을 감당했는데, 그 밑에서 배운 고린도 성도들은 오히려 자랑합니다. 우리도 스승을 자랑하면, 자기가 높아지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스승을 닮아서 겸손한 것이 진정으로 스승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면, 예수님처럼 행하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실로 높임을 받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4:9-13)
사도 바울은 환난, 박해, 곤고 속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교만하여 누구의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지혜롭다고 떠듭니다. 참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세상을 정화시키는 걸레처럼 쓰입니다.
권면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4:14-21)
결론은 간단합니다. 바울 사도의 삶과 행동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바울이 고린도 성도에게 나아가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기에, 조금 알고 있는 것으로 자랑과 교만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이 알 수록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음행의 문제 : 묵은 누룩 비유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5:1-8)
고린도 성도들 중에 근친상간(近親相姦)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 당시 헬라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세 부류의 여성과 교제했던 문화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식을 위해서 결혼하여 아내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관상용(?) 애인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성욕해결을 위해서 매춘 행위를 했습니다. 일종의 창녀촌이 있었지요. 아버지와 아들이 한 매음굴을 다닌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음행의 문화를 ‘묵은 누룩’으로 바울은 비유합니다. 기독교는 성결함을 강조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은 한 몸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이성(異姓)은 두지 않고 오직 결혼한 한 아내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성도의 가정은 부부 안에서만 관계를 갖는 것이 옳습니다.
매춘 행위를 하는 것도 문제이고, 거기에 성적 취향(?)까지 같아서 아버지와 아들이 다 음행에 빠져 한 여인(?)에 매여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자들과는 교제를 끊고 교회 안에서 징계해야 합니다. 사탄에게 내어주게 되면, 육체는 병들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이즈와 성병 같은 것입니다. 이런 질병의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겠지만(당시에는 치료제가 별로 없음), 영혼은 불 가운데서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인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은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지요. 육체는 죽음을 맞으나, 영생은 얻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5:10-13)
이 음행의 문화가 가득한 고린도 지역에는 그러면, 전도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회개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형제자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생활과 삶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였노라 하지만, 여전히 묵은 누룩에 오염이 되어 있다면, 교회의 치리는 꼭 필요합니다.
법정 다툼, 소송 문제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6:1-11)
성도 간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회 안에서 세운 장로나 목회자가 바르게 치리하지 못할 정도의 사람을 세우면 안 됩니다. 세상 법정에 가기 전에 교회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옳습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수준이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세상보다 정의롭고 공의로워야지, 앞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심판할 텐데, 심지어 여기 본문에는 천사도 성도가 판단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만, 어쨌든 세상의 기준이 아닌 높은 도덕적 우월성을 교회는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차라리 손해를 보고 불의를 당하라고 권합니다. 교회 안의 불의한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우상 숭배자처럼 똑같이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는 완곡한 표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그 죄값을 치러서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성령 안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행동하고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몸은 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전이니, 하나님께 영광돌리라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6:12-20)
매춘이나 소송이나 이 땅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결혼과 독신, 사별한 배우자 등 부부지침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7:1-7)
독신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부부로서 서로 사랑하고 관계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으면 유혹이나 시험이 닥칠 수 있으니까 특별히 기도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떨어져 있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7:8-11)
혹시 이혼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냥 혼자 지냈던 시절처럼, 그냥 지내든지, 아니면 다시 이혼한 배우자와 다시 합치는 것이 맞습니다. 신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이혼해 달라고 할 때, 이혼해 주고 같이 살고자 할 때는 다시 합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배우자를 구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7:12-17)
이혼하지 않는 것이 좋고, 옳습니다. 전제는 화평이지요. 가정 폭력이나 학대에 의해서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경우는 이혼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도 간음한 경우에는 이혼을 허락하셨습니다. 이혼할 경우가 있지만, 화평한 가운데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가정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7:18-24)
결혼과 이혼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할례, 무할례가 나오는 이유는 믿는 여자가 헬라인에게 시집을 가서 만약 남편을 전도했다고 합시다. 이럴 때, 할례를 해야 할까요? 할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은혜가 왔기 때문에 굳이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인의 관습에 매여서 유대인으로서 살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됩니다.
처녀, 총각에게 주는 바울의 권면 (하나님의 뜻은 아님)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7:25-40)
바울 사도는 처녀, 총각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냅니다. 그러나 전제는 곧 예수님이 오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대 환란 때, 가족을 잃는 슬픔이 크지 않겠습니까? 순교 당할 때, 자녀나 배우자가 죽게 된다면 배도할 위험도 있지요. 아무튼 결혼을 해도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같은 목표와 뜻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면 더 아름답습니다. 온전히 주님 안에서 가정을 이루어, 거룩한 자녀들을 양육하는 복된 믿음의 가정들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아름다운 가정생활을 위한 지침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땅의 음란하고 퇴폐적인 문화에 저희들이 젖어들지 말게 하시고, 거룩한 가정을 세워 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거룩하게 성장케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게 만남의 복을 주옵소서! 때가 악하여 여러 가지 세상적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하고 불신과 분열의 삶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봉사하고 일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거룩한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주님을 본받아 따를 때 세상의 시련과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강한 믿음을 주시고 선으로 악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믿음의 선조들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본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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