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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열왕기하] 2장 엘리야의 승천(昇天)과 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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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1회 작성일 2025-06-08 19: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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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허익호 교수의 한국신학마당 >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1)

 

 이제 엘리야의 사역은 끝이 났습니다. 사명을 다 마친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시려고 합니다. 보통은 죽음이지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명을 다 마치기 전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큰 가뭄과 비와 갈멜산에서의 불이 떨어져 내리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을 세상 사람들이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심판했지요. 그러나 큰 기적과 이적이 일어난 것에 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돌이키게 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엘리야가 못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악하고 완고해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엘리야는 마지막 사역을 감당하는데, 그것은 엘리사에게 자신의 사역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이적에도 불구하고, 엘리야의 사역 중에 가장 잘한 것은 자기 제자 엘리사를 남긴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봉사한다, 교회에서 찬양하고, 봉사하며, 많은 일을 한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명은 자신의 일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후사, 혹은 제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자녀를 많이 낳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를 온 세상에 선교하거나 포교를 하지 않지만, 수천 년 동안 명맥이 이어져 내려온 이유는 자녀를 많이 낳고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 다시 사명을 받은 뒤에, 어떻게 제자를 세웠는지 열왕기하 2장에서 살펴 볼 것입니다. 

 

 우리가 열왕기상에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한 동안 엘리사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엘리야를 따르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수행했고, 그러면서 엘리사의 제자들까지 생겼습니다. 엘리야는 단 한 사람, 엘리야만을 가르쳤지만, 엘리사에게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최소한 50명 이상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2-3)

 

 엘리사는 벧엘에 선지자 학교를 세웠습니다. 엘리야가 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엘리사도 물론 그 사실을 알았지만, 엘리사의 제자들도 또한 엘리야가 곧 떠날 것을 알았습니다. 엘리야가 연세가 지긋하게 들어서 그런 생각을 제자들이 가졌을지도 모르지만, 엘리사는 제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엘리야가 가는 곳으로 따라갈 채비를 합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4-5)

 

 벧엘에서 여리고로 엘리야가 갑니다. 그곳에도 선지자 학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에게 엘리야는 벧엘에 머물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 나섭니다. 여리고의 선지자의 생도들도 엘리야가 하나님께로 갈 줄 압니다. 벧엘의 선지자 생도들이나 여리고의 생도들이나 앞으로 엘리야가 자신들을 떠날 것을 압니다.  엘리사는 벧엘이나 여리고의 제자들에게 자신도 아니까 잠잠하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품위지요. 엘리야가 이제 나는 하늘로 떠난다 하면서 작별인사를 하지 않지만, 엘리사도 엘리사의 제자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송별회나 어떤 은사를 모시고 연회를 베풀지 않습니다. 그저 엘리야는 생도(生徒)들을 한 번 돌아볼 뿐입니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6-7)

 

 엘리야는 이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갑니다. 정확한 장소는 잘 모르겠지만, 여리고에서 가까운 요단 강 근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엘리야를 꼭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참 끈질깁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가버리기 전에 엘리사는 스승으로부터 꼭 받아야 할 것이 있어서 놓치지 않고 따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엘리사의 50명의 제자들도 뒤에서 엘리사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멀리 서서 바라만 보고 있지요. 자기 선생과 큰 스승 엘리야에게 무엇을 배우는지 또는 얻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좀더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멀리 떨어져 있지요?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8-9)

 

 엘리야가 요단 동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자기 겉옷을 둘둘 말아서 갑자기 강물을 칩니다. 그랬더니 놀랍게 요단 강 가운데, 육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치 이집트 군대를 피해 홍해 바다 앞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 가운데 육지를 건너서 탈출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일처럼 요단 강이 갈라져서 뭍(땅)이 드러납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건너는데, 제자들은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을 지켜만 보지 따라서 건널 생각은 없습니다. 

 

 엘리야가 자꾸 자신을 따라오는 엘리사에게 내게 무엇을 원해서 자꾸 따라오는지 묻지요. 드디어 엘리사가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엘리야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달라고 합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행하는 여러 가지 기적을 자기도 행하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엘리야에게 요구하는 것은 옳은 방법도 아니고, 예의도 아닙니다. 신약시대에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한 을 받고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자, 이런 능력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지요? 마술사 시몬,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그를 저주했습니다.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0-11)

 

 엘리야는 점잖게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했지만, 책망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엘리사가 인격적으로나 영적 지식으로 보나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엘리야가 주거나 말거나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은 하나님게서 그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성령의 충만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간구하고 성령님의 뜻에 굴복할 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사의 간구가 이뤄집니다. 그 증거로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직접 엘리사는 보게 됩니다. 우리의 어이없는 간구와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엘리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쫓아다니고 간절히 구해서 되었다고 생각될 지 모르나, 이미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택하셔서, 다음 사역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을 경험했습니다. 불수레와 불말들이 엘리야를 죽음없이 하늘로 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느끼고 본 것은 허리케인처럼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공중으로 뜨게한 것이지요. 회오리 바람이 사라지자, 엘리사의 제자들은 엘리야가 어딘가 땅에 떨어져 죽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16).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 (12)

 

 엘리사가 왜 엘리야의 성령의 능력을 요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나라를 지키는 보루(堡壘)라고 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처럼, 아람 나라나 외부 적대세력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는 군사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엘리야가 떠나가면, 그 뒤에 어떻게 적들을 막을 수 있을지, 항상 근심과 걱정이었습니다. 

 

 엘리사의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입니다. 엘리사에게 성령의 능력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세우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무모하게 요구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엘리사가 무슨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소원의 ‘동기’를 보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정말, 이스라엘을 마병과 군대처럼 지키는 놀라운 기적을 엘리사가 행하게 되는데, 우연이 아닙니다. 물론, 엘리사가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별칭처럼, 기억되는 성호가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아합 이후로, 사실 북이스라엘은 그저 별 볼일 없는 힘과 군대를 가졌지만, 한동안 나라가 유지되고, 외세의 침략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 때문입니다. 이 사역에 엘리사가 쓰임을 받게 됩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3-14)

 

 이제,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찢어 버리고, 땅에 떨어진 엘리야의 겉옷을 주워 입습니다. 그리고 요단 서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엘리야의 겉옷을 둘둘 말아 엘리야처럼 요단 강물을 내리치니, 엘리야와 함께 요단을 건널 때처럼 동일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물이 갈라지고 그 사이 마른 땅을 건너오지요.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15)

 

 여리고의 제자들이 엘리사 앞에 경배합니다. 이제 엘리야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온전히 임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중국의 무술영화를 보면, 스승으로부터 내공을 물려 받은 제자처럼 엘리사가 엘리야로 빙의(憑依)한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16-18)

 

 엘리야는 하늘로 올려졌는데, 선지자 생도들은 엘리야가 허리케인에 의해 죽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돌풍으로 엘리야를 죽게 했다고 믿으니, 참 어이없는 망상(妄想)을 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엘리야에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엘리야의 제자들 50명씩이나 허튼 짓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19-22)

 

 여리고의 성읍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얻은 엘리사에게 성읍의 수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여리고 지역의 위치는 참 좋은데, 물이 좋지 않아서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게 합니다. 그리고 물 근원이 시작되는 곳에 가서 소금을 뿌리지요. 일반적으로 물에 소금을 뿌린다고 해서 물이 정화되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물이 해독이 되고, 사람들이 마셔도 될만한 물이 되고, 농사 짓기에도 적합한 물이 됩니다. 

 

 오늘날에도, 물은 참 중요합니다. 옛날 조선시대에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고작 40년 안팎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에는 벌써 80세가 넘었지요. 교통 사고나 암 같은 질병만 없으면 거의 90세는 넘게 삽니다. 이유는 과거보다 수질이 깨끗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120세까지 살려면, 공기도 좀더 좋아져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이적이 엘리사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23-25)

 

  엘리사가 벧엘에 올라가니, 엘리사의 외모를 보고, 놀리는 아이들 몇이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머리카락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엘리사가 자기 외모에 대단히 컴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을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를 놀렸던 아이들이 곰의 습격을 받아 죽게 되었는데, 42명 씩이나 됩니다. 엘리사의 인품이 그리 너그럽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하나님 종을 함부로 놀리거나 험담하면 안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했더니, 어린 아이라지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엘리사의 권위는 더 섰겠지요.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놀린 것 때문에 죽인다는 것은 참 아쉬운 장면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이 이 정도로 권세가 있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느껴야 합니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가 성령의 능력을 얻게 되는 장면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엘리야를 쫓았던 엘리사의 제자들도 있었지만, 엘리야의 그 성령의 능력을 이어받은 사람은 엘리사였습니다. 엘리사와 그의 제자들도 모두 엘리야가 떠나갈 것을 알았지만, 능력을 힘입은 것은 엘리사 뿐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엘리사의 포기하지 않고, 스승을 따르며, 간구하는 그 적극적인 자세와 태도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령을 돈을 주고 사거나,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는 없습니다. 성령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엘리사가 그 능력을 엉뚱하게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을 저주하는데 남용한 안타까운 장면도 없지 않았지만, 나라를 구하고 살리는데, 쓰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엘리야를 뒤쫓은 것은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주님을 뒤따르며, 포기하지 않고 주를 앙망하는 자세를 엘리사를 통해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패배자처럼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때로는 얍복강의 야곱처럼, 주님을 붙잡고 놓지 않는 적극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엘리사를 택하시고, 엘리야의 후계자로 점 찍어 놓으셨지만, 엘리사는 그것과 상관없이 엘리야를 적극적으로 쫓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적극적으로 쫓아야 하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는 엘리사의 제자들처럼 멀찍이서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이 되면 안 됩니다. 엘리야의 시체를 찾아 장례를 치르러 엉뚱한 짓을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성을 간구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묵묵히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 7:7-8)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엘리사가 길갈에서부터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 동편까지 엘리야를 쫓으며, 성령의 능력을 간구한 것을 봅니다. 엘리사가 자신을 따르는 수십 명의 제자들이 있고, 평안하게 지낼 수도 있었지만,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며 엘리야를 따른 것을 봅니다. 그 동기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참 스승되시는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우리는 엘리사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간구하는지 돌아봅니다.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는 참 성도가 되게 인도하옵소서! 우리들은 멀리서 구경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주님의 참 제자로 주님의 부탁하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스승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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